月刊 아이러브PC방 9월호(통권 32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가을 비수기가 시작됐다. 최근 몇 년 사이 PC방의 비수기는 예년과 조금 다른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초중고교 방학이 짧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기간이 늘어났고, 방학/개학 시기를 학교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어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이 다소 옅어진 것이다.

여름 성수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무심코 옆을 봤더니 가을 비수기가 바로 옆에 와서 앉아 있고, 화들짝 놀라 맞서 싸울라 치면 겨울 성수기의 어깨너머로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놈은 원래부터 지존급 장비를 풀셋으로 갖춘 전사였는데 이제는 신출귀몰한 움직임까지 갖춘 암살자로 전직한 셈이다. 물론 전사의 전투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차가운 땅바닥에 눕기 싫은 PC방 입장에서는 꽤나 골치 아픈 상황을 맞이한 셈이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비수기의 공격력을 버티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는 와중에 누군가 어마어마한 버프를 걸어주고 있다.

그 은인의 이름은 바로 <배틀그라운드>다. 그러나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에 앞서 버프의 면면을 한 번 살펴보자. 얼마나 도움이 되는 버프인지, 어떻게 싸울 것인지 전략을 세워보자는 말이다. 당장 비수기와 싸워야 하는 당사자는 <배틀그라운드>가 아닌 우리니까.

먼저 <배틀그라운드>는 기존의 게임들과 다른 참신한 소재, 새로운 문법으로 쓰였다. 이런 이유로 게이머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게 또 PC방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PC방 하드디스크 깔린 게임 중 할 게임이 없다고 푸념하던 게이머들이 PC방에 오기 시작한 것이다. ‘신규 고객 창출’은 PC방의 지상과제 아니던가.

다음은 성인 고객이다. <배틀그라운드>의 게임물이용등급은 ‘청소년이용불가’로, 오직 성인만을 위한 게임이다. 이런 게임이 게임업계 최대 화제작으로 떠올라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으니 <배틀그라운드>를 플레이하는 성인 게이머들의 극히 일부만 PC방으로 유입시켜도 남는 장사다. 또한 성인 고객의 일부는 오후 10시 이후에도 좌석을 채워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스팀(Steam)이다. 스팀은 글로벌 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온라인 유통 서비스로, 기존 PC방 게임 서비스 체계와는 매우 이질적인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팀이 버프로 작용할 수 있는 이유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가 직접 라이선스를 구입하는 상식이 적용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틀그라운드>가 선물한 ‘신규 고객 창출’, ‘성인’, ‘스팀’ 세 가지 버프를 믿고 비수기와 진검승부를 벌이면 될까? 일단은 그렇다. 아마 실력이 출중한 매장은 버프 없이도 비수기를 상대로 승리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PC방에도 강제로 버프가 걸렸는데, 이 버프가 약간의 독성을 포함하고 있다면?

버프의 효과는 확실하지만 독성의 실체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이런 이유로 <배틀그라운드>의 독성에 대한 우려를 괜한 호들갑 정도로 치부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트리스2 블루>처럼 게임이 PC방에 걸어주는 버프라는 이름의 선물은 때때로 마각을 드러내곤 했다.

과거 <포트리스2 블루>는 PC방 유료화, 정액제에서 정량제로의 전환 등을 강행했다. 전자는 게이머에게 받아야 할 돈을 PC방에서 갈취하는 정책이었고, 후자는 기울어져 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PC방의 고혈을 빨아가는 정책이었다. 대다수의 PC방들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일부는 매출에 일조할 것이라며 굴복했다.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는 <포트리스2 블루>가 남긴 발자국을 밟으며 뒤따르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스팀에서 서비스되는 패키지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국내 서비스하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버프마저 위협에 노출된 셈이다.

이런 종류의 독성은 PC방이 게임사를 주시하고 견제할 때만 중화시킬 수 있다. 신출귀몰 나타났다 사라지는 비수기와 싸우는 와중에 언제 독성을 뿜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게임사를 주시하게 생긴 PC방 업계는 이번 가을이 꽤나 피곤한 세월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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