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3월호(통권 40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의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매장 풍경은 크게 변한 점이 없다. 늘어선 모니터 화면에 게임이 가득하고, 오후부터 초중고교생들이 차례로 찾아와 매장을 왁자지껄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PC방 내부에서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이 주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 PC방 주방 확장에 대한 업주들의 고민이 늘고 있는 가운데, 아이러브PC방 통권 400호를 맞아 지난 세월 PC방 주방의 변천사를 짚어봤다.

밀레니엄 이전, 주방이랄 것도 없었는데
업종이 태동한 직후부터 밀레니엄 전후까지는 PC방에 주방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었다. PC방은 ‘스타크래프트’를 실행할 PC들과 손님들의 출입을 관리할 매장관리자가 머무를 카운터만 있으면 됐다. 식음료 조리를 위한 전형적 주방은 고사하고, 싱크대나 전자렌지 같은 기본적인 시설도 갖추지 않은 PC방이 대부분이었다.

이게 바로 이 시절 PC방의 모습이었다. 애초에 PC방이라는 업종을 염두에 두고 창업한 업주보다 매장에 PC를 몇 대를 들여놓았다가 시간이 지나 결과적으로 PC방이 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IMF 시절 시작한 컴퓨터 수리점이 ‘스타크래프트’라는 인기 게임의 등장과 함께 어느샌가 PC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한 레퍼토리다.

매장 규모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는데, 가뜩이나 협소한 카운터에는 관리자용 PC가 자리잡게 되고, 여분의 게이밍 기어도 보관하게 됐다. 알바생이 청소도구를 세척할 싱크대가 카운터 안쪽에 있다면 그 매장은 제법 시설이 좋은 매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PC방에서 판매하는 음료라고 해봐야 여름엔 캔콜라, 겨울에는 100원짜리 종이컵 커피가 다였다. PC방에서 음식을 먹는 손님도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중고등학생들이 과자를 먹는 정도였다.

PC방의 전성기, 주방은 실험적 매장에서나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새천년을 맞이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포트리스’와 ‘카트라이더’는 여성들도 PC방을 이용한다는 깨달음을 준 게임들이다. 여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신작 MMORPG들이 출시됐고, 손님들의 이용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컵라면’이 PC방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다.

허기를 달래려 끼니를 때우는 시간도 아까운 게임들이 수없이 등장했기 때문인데, 밖에 나가지 않고 PC방 앉은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바로 컵라면이었다. 출처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PC방 컵라면 판매량이 전국 편의점 판매량을 넘어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렇듯 PC방에서 컵라면 소비를 견인하는 와중에 나랏님은 뜨거운 물 부어주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를 두고 업계 내부에서는 온갖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PC방이 전성기를 맞이했어도 주방 부문에서의 발전은 거의 없었다. 꽃이 져야 봄인 줄 아는 것처럼 황금기의 한복판을 지날 때는 절치부심해서 회심의 아이템이 나올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PC방 주방의 답보는 아리송할 필요가 없다. PC방의 주요 이용층인 학령인구도 북적이던 시절이라 악착같이 매출을 올리려고 먹거리에 목멜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매장 근무자가 손님의 요청을 받아 근처 중식점에 배달을 주문하면 그만이었다.

이즈음 시대를 앞선 선견지명을 가진 일부 업주가 모터쇼에 등장하는 콘셉트카처럼 주방을 선보였다. PC 이용요금 인상은 가망이 없어 보였고, 해답은 부가적인 매출에서 찾아야 했는데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기획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PC방에서 돈까스나 덮밥을 먹는 일이 대단할 것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센세이셔널한 일이었다.

쇠퇴기 극복을 위한 카페형 PC방의 대두
시간이 흘러 PC방은 신작 게임들의 공동묘지가 됐고, 대박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가 등장했지만 황금기와 비교하면 PC 가동률은 미끄럼틀을 탄 듯이 빠르게 하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PC방 주방은 이 시절부터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런 의미에서 PC방 주방은 감소한 매출 공백을 메우는 암흑물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업종의 활력을 대변하는 PC 가동률과 부가매출을 대변하는 먹거리는 반비례 관계가 틀림없다.

실내가 밝아지고, 카페형 인테리어를 표방하는 매장도 많이 생겨났다. 주방에 커피머신과 디스펜서를 갖추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됐다. 더 이상한 점은 어제까지 ‘PC방’이었던 간판이 ‘○○○ PC카페’라고 바뀌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PC방으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PC방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기존의 틀 속에서 PC방의 문법을 지키다가는 매출 유지도 힘들어서다.

PC방이 매출 증대를 위해 변신을 꾀하기에 카페는 나쁘지 않은 참고자료였다. 디스펜서와 커피머신, 그리고 제빙기를 들여놓으면 캔음료보다 마진을 훨씬 많이 남길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휴게음식점 영업허가를 확보하는 유행이 업계를 강타했다. 법정 음식점이 된 마당에 다양한 음식 메뉴를 시도해봤더니 매출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 매장 근무자가 머무는 카운터 공간을 희생하더라도 주방은 포기할 수 없는 돈주머니가 된 것이다.

이 시기 여성 손님들도 크게 늘었다. 블리자드가 내놓은 신작 FPS게임 ‘오버워치’는 체감이 될 정도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카페처럼 꾸미고 그럴싸한 음료를 내놓는 PC방이 이 시기를 풍미하는데 일조했다. 음료도 만들고 본격적인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한 PC방 주방의 발전은 속도가 붙었고,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업소용 주방기기들이 꽉 들어찬 PC방 주방은 만성적인 공간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앞으로 PC방 주방은 어떻게 변해갈까?
본격적인 음식점 주방설비를 갖추는 흐름은 2024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피자를 굽기 위한 화덕, 만두를 찌기 위한 찜통, 통구이를 위한 화로대 그릴, 돈까스를 튀기기 위한 튀김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조리기구들이 PC방 주방에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PC 대수를 줄이면 줄였지 주방만은 확장일로를 걷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규제가 불러올 폭발적인 설거지 증가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들여놓은 식기세척기도 있다. 규제는 일부 유보됐지만 식기세척기의 세례를 받은 PC방들은 이 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한 웬만한 음식점에서도 갖추지 못한 배기시설(후드·덕트 등)을 도입한 PC방도 여럿 있다. 심지어 대형 치킨·커피 프랜차이즈 업체가 본사 차원에서 가맹점에 제공한다는 조리로봇을 자체적으로 도입한 매장까지 등장했다.

PC 이용요금 부문에서 PC방 업주가 만족할 만큼의 인상폭이 나타나지 않은 이상 PC방 주방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 자명하다. 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공간적으로 제한이 있어서 원하는 만큼 설비를 욱여넣기 힘든 시점도 온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PC방 주방의 다양한 장비들 중 일부는 업소용 대형설비를, 또 다른 일부는 미니가전제품을 취사선택하는 하이브리드 체제를 요구받게 될 전망이다. 현장을 알바생에게 맡겨놓지 않고 손님들의 특성과 취향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한 PC방 업주만이 내 매장에 완벽하게 딱 들어맞는 주방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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